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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여행]능가산 자락의 개암사에서 마음속에 자연의 평온함을 담아 가세요

푸른희망(이재현) 2011. 6. 23. 06:00

 능가산 자락의 대표적인 사찰인 개암사와 내소사~~

특히나 오늘은 그 중에 개암사를 찾아 둘러 봅니다.  눈으로 즐기는 천년고찰의 역사기행 ~ 마음까지 고즈넉하게 평화로움을 가득 담았답니다.

 

들어가는 초입의 웅장한  일주문이 가장 먼저 외부인을 맞습니다. 커다란 기둥 넷이 일렬로 서있는 위에 정교한 건축이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역학적으로 중심의 힘을 이용하여 절대의 건축미를 살린 특유의 양식이다.

이문의 뜻은 一이라는 데에 있다.  개암사는 두개의 용형상의 석조위에 다시 두 기둥을 세워 용을 형상화한 일주문으로 특색이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우주 만유를 일심(일심)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며 법계(法界)전체를 일심의 그림자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화엄경에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였으며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 하여 고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일심에서 일어난 현상이라 결론짓는 것이 불교의 본질인 것이다. 이 문을 경계로 하여 문밖을 속계(俗界)라 한다면 문안은 진계(眞界)인 것이며,

 이 문을 들어설 때 일심에 귀의한다는 결심을 가지도록 하는 마음을 촉진 시키는데 그 뜻이 있는 것이다.

 

 

 

개암사는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714번지에 자리하며 주변의 빼어난 절경으로 더욱 이름난 고찰입니다.
특히 개암저수지를 거쳐 절에 이르는 길은 단풍나무를 비롯한 각종 수목이 울창하게 들어차 있어 절을 찾는 이들에게 늘 상쾌한 기운을 주고 있습니다.
변산(邊山) 기슭의 울금바위, 즉 우금암(禹金癌) 아래에 있는 이 사찰은 일제강점기에는 백양사(白羊寺)의 말사였으나,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의 말사입니다.

634년에 묘련(妙蓮)이 창건한 백제의 고찰로 개암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282년 변한의 문왕이 진한과 마한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 도성을 쌓을 때, 우(禹)와 진(陳)의 두 장군으로 하여금 좌우 계곡에 왕궁전각을 짓게 하였는데, 동쪽을 묘암(妙巖), 서쪽을 개암이라고 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676년에는 원효와 의상이 이곳에 이르러 우금암 밑의 굴 속에 머물면서 중수하였고, 1314년 원감국사(圓鑑國師)는 조계산 송광사에서 이곳 원효방(元曉屈;우금굴)으로 와서 지금의 자리에 절을 중창하여, 대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황금전(黃金殿)을 중심으로 하여 동쪽에 청련각(靑蓮閣), 남쪽에는 청허당(淸虛堂), 북쪽에는 팔상전(八相殿), 서쪽에는 응진당(應眞堂)과 명부전(冥府殿)을 지었으며, 총 30여동의 건물을 세워 《능가경(楞伽經)》을 강의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교화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산의 이름을 '능가산'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1414년에는 폐허가 된 절을 선탄(禪坦)이 중창하였고, 1636년에 계호(戒浩)가, 1658년에는 밀영(密英)과 혜징(慧澄)이 대웅전을 중건하였으며, 1783년에는 승담(勝潭)스님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절에서 500m떨어진 곳에 울금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고, 이 바위에는 모두 세개의 동굴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원효방이라는 굴 밑에는 조그만 웅덩이가 있어 물이 괴어 있다고 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원래 물이 없었으나 원효가 이곳에서 수도하기 위하여 오면서부터 샘이 솟아났다고 합니다. 또한 이 바위를 중심으로 한 주류성(周留城)은 백제의 유민들이 왕자 부여 풍(扶餘豊)을 옹립하고, 3년간에 걸쳐 백제부흥운동을 폈던 사적지로도 유명합니다

 

 

길이가 길지는 않아도  좌우로 전나무 숲의 싱그러운 산책길이 너무도 맘에 드는 곳입니다.

 

 

개암사로 입사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쳐야만 하는 "불이교"  두개가  아닌 다리????

 

불교에서는 불이(不二)란 뜻이,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며,

선과 악도 둘이 아니며,

유와 무가 둘이 아니며,

공과 색이 둘이 아니라는

 

깊고도 묘한 뜻을 가진 것 입니다

 

결국엔 하나라는 뜻을 던져주는 경건한 다리 입니다.

 

멀리 산등성이로 울금바위가 보입니다.

 

 

이 돌계단을 오르면  부처님의 크신 자비로 평화로운 개암사가

전경에 들어 올 것입니다.   보이지 않음은 신비 그 자체 입니다.~

 

여타 사찰과는 달리  사대천왕이 지켜 서있는 천왕문은 없지만 

울금바위의 강력한 기운이 개암사를 천년이 넘도록 지켜온 근본이라는 생각이 전광석화 처럼 달려 옵니다.

 

현세의 무수한 업보를 쌓아 가듯 

차곡 차곡 쌓여진 기와장들이 눈길을 끄는 것은 당연합니다.~

 

경내에서 약간 좌측에 그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는 매실목이 참 영험해 보입니다.

아무도 몰래 " 청매실" 하나 입속에 넣었답니다.  `~

 

대웅전의 웅장한 모습이 눈에 꽉 차게 들어옵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불좌상"이 모셔진 지장전 앞의 당간 지주 입니다.

그 위에 올려진 무수한 소망들이 위태 위태 하게 자리를 고수합니다.

 

이 대웅전은 

백제 무왕 35년(634년)에 묘련 스님이 지었으나 임진왜란때 불타 버린것을 조선 인조 14년 (1636년) 계호 스님이 다시 지었답니다.  여기엔  석가모니 주불을 비롯하여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  중생을 돕는 보현 보살님을 모셔두고 있지요  규모에 비해  우람한 기둥을 사용하여  안정감을 준 건축으로 건축물 곳곳에 용의 머리와 봉황을 새겨넣어 전체적으로 장중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대웅전 좌측의 관음전 옆의 보리수가 하나 둘씩 익어가는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대웅전 우측으로는  산신각이 있구요

 

대웅전 뒤로  거대한 울금 바위가  두 눈을 부릅뜨고 내려다 보듯이 웅장 합니다.

 

 

전라남도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호두 나무가"   관음전 뒤의 비탈길에 탐스럽게 열매를 매달고 있습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속이 상할 때는 석가모니를 모신 사찰을 둘러 보면 참 마음이 경건해지고 편안해 집니다.

가끔씩  가까운 사찰을 찾기도 하지만  이번 부안 여행의  개암사 방문은 또 다른 마음속의 이정표를 새기고 돌아 갑니다.

일주문으로 돌아 가는  길에  전나무의 싱그러움이 발길을 잡지만...  행복한 마음을 얻어 걸어 갑니다.~~

 

마음이 울적 하십니까?

마음속에 응어리가 쌓여 고뇌하십니까? 

어디론가 조용한 곳을 찾아 떠나신다면  능가산 자락의 개암사에 한번 다녀 오시지요~! 

 

 후련해 집니다.~

 

 더 궁금하시다면 부안군  문화관광 홈페이지로 바로가기를 꾸욱 눌러 주세요   http://www.buan.go.kr/02tour/index.j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