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장성 진원면에 이사를 온지 3년, 회사 퇴직을하고 처음 접했던 통계청의 인구조사 업무가 생각이 납니다. 타향인 장성에 이사 온 저로서는 인구조사 기간에 이웃마을 곳곳과 여러 마을 분들을 한 분 한분 알게 될 수 있다는 기쁨에 벅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구조사를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 찾아온 몸 상태의 악화로 최후의 간이식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병원의사의 진단선고가 기쁘게 시작한 인구조사 일을 중간에 그만두어야만 했던 미완의 안타까운 아픈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통계청의 인구조사원 모집에 채용되어 지난날의 미완의 아픈 기억을 말끔히 지워버릴 절호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지긍은 황룡면으로 이사를 해서 장성군 황룡면 일부 구역을 담당합니다. 200여 가구를 돌아보면서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습니다. 2006년 간이식후 건강하게 회복된 체력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아주머니, 형님 같으신 많은 분들의 지나온 삶의 얘기들을 들을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추운 날씨에 다니면 많이 시장하다시며 방금 끓인 녹두죽을 차려 주시던 어머님 같은 아주머니, 아침시간에 차가운 두유를 따스하게 데우시어 마시라며 권하시는 할머님, 저녁 시간엔 늦은 시간 출출할 텐데 하시며 조사표 작성하는 동안 정이 가득한 호박고구마와 고향의 맛 김치를 내놓으시며 독려해주시던 아주머니, 사과밭에서 조사표 작성하시던 과수원 아저씨, 색깔 고운 사과 몇 개를 따서 가방에 밀어 넣어주셨지요 , 모두 모두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세상엔 좋은 일, 마음 따듯한 사람들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구조사, 뭐가 이렇게 코치코치 캐묻는 것이야!” 하시며 조사를 거부하는 분,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으로 차가운 철 대문을 사이에 두고 조사표를 작성 하던 일, 인터넷 조사를 할 테이니 바쁘다고 어서 가라는 분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을 사람답게 하는 진솔한 모습들을 배우게 되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훌륭한 성찰의 시간도 되었습니다.
어떤날은, 밭에서 생강을 수확하는 아주머니의 옆지기 되시는 아저씨께서 방금 쪄온 하얀 팥고물의 떡을 건네시며 "우리 아들 나이인데...." 많이 들라는 말씀, 대봉 밭에서 감 수확을 하시며 잘 익은 홍시 하나를 미소로 건네시던 아주머니, 특히나 백발이 성성한 증조할머니 같은 어르신은 지금도 잊히지를 않습니다. 집 앞 문턱에 앉아 말씀을 나누시며 작년에 먼저 세상 떠난 며느님을 생각하시며 먼 산을 바라보시는 눈에 금세 눈물이 맺히시던 애틋하고 찐한 고부간의 사랑이...마음 속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사표를 작성 중, 마당에서 밧줄에 묶여 낯선 사람을 경계하며 짖어대는 누렁이를 보면서, “젊은이, 저 녀석이 사람보다 밥은 더 처먹으니 저것도 조사를 해야 혀!” 하시던 우스개 말씀 속에 며느님의 빈자리를 더욱 그리워하시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대문까지 나오시며 배웅을 해주시는 할머니, “ 할머니 5년 뒤 또 제가 인구조사 나올 때까지 오래 사셔야 되요!” 하고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내 코끝과 가슴속에 아려오는 오래전의 제 할머니의 초상이 그려졌습니다.
또한 산 속에 견사를 운영하면서 유방암 수술을 받은 아내와 함께 일을 하는 어느 아저씨의 애절한 사연들이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1차 수술은 되었으나 폐암으로 전이의 징후가 보인다면서 아내에게 공기 좋은 숲속 별장을 선물하고 싶다는 아저씨의 간절한 바램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벌써 5년이 다 되어 갑니다. 2006년 남동생으로부터 간이식을 받은 저에게 동병상련의 아픔들이 주마등처럼 밀려옵니다. 아내와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아저씨의 한 숨 섞인 말씀 들이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귀농한 저에게는 농촌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격려 한마디 한마디에 살만한 가치가 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제는 농촌으로 귀농,귀촌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고 있다는 것도 아주 고무적이고 환영할 일입니다. 이제는 농촌도 많은 변화를 하고 있어 보였습니다. 우선은 주거환경의 시설들이 시골생활을 하기에 편안한 구조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아직도 안타까운 것은 농촌 인구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원주민과 귀농인들 과의 원활한 교류와 협력으로 위화감 없이 빠르게 안정적인 정착하게 하는 것도 매우 필요하리라 봅니다.
5년마다 하는 인구조사라지만..... 아마도 5년 후 내가 2010년 11월에 만난 가슴 따뜻한 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의문도 들지만... 이번 조사기간에 만난 장성 황룡 사람들의 비록 일부이기는 하여도 투박하고 진솔하고 꾸밈없는 삶의 풍경들과 가슴 뭉클했던 사연들은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도 나의 일기장엔 이분들과의 훈훈한 이야기들이 깨알같이 차곡차곡 쌓여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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