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의 이사
그런데 제천 금성에서의 생활도 정말 잠시 였습니다. 아마 1학년도 마치지를 못하고 이사를 가야 했지요.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운영하셧던 한의원도 못하시게 되니 아버지는 이 곳을 떠나 서울로 가기로 이미 마음을 굳히신 상태 였습니다.
아마 이 때 삼촌들과 할아버지, 할머니와 마찰이 계셨던 것으로 압니다. 서울에서 살 방 값만 마련해 주라는 아버지의 요청과 시골에 계신 가족들의 만류, 이유는 단 하나 였습니다. 육신이 성한 사람들도 살기 어려운 것이 서울인데, 어떻게 그런 몸으로 자식들을 데리고, 정신도 똑똑치 못한 여자를(엄마의 정신연령이 매우 낮았다고 합니다.) 데리고 가려 하느냐는 집안의 반대가 무척 심했지요.
하지만 아버지의 고집은 꺽을 수가 없었나 봅니다. 나 또한 어려서 아버지의 의지는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주어진 인생의 굴레에 굴복하지 않고 새 삶을 개척하려 무수히 변화를 시도하려 했던 그런 아버지시다.
정말 초등학교 1학년 이전의 기억은 그리 생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잊혀 지지 않는 것들이 있죠. 봄이면 냇가의 버들강아지들이 싱그러히 피고, 맑고 시원한 시냇물이 흐르던 내가 살던 그 곳의 풍경 말입니다. 아버지의 한약 상자를 수시로 열어 몰래몰래 먹던 달콤한 한약, 아마 지황을 재료로 만든 까만 색의 젤리 같은 모양이었습니다. 정말 달콤했던 기억입니다. 보리 밭이 바람에 일렁이고, 그 옆 논둑, 밭둑 길을 맨발로 걸으며 마냥 즐거워 하던 어린 시절을 잊지를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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