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또 다시 인생의 쓴 맛을 느끼셔야만 하는 아픔의 시간들이었죠.
그 때 내 나이 어려 아버지의 고통을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단지 철없던 어린시절 나는 뒷 산 계곡에서 봄이면 진달래와 버들강아지라는
하얀 솜털이 이쁜 나무를 정신없이 따먹고, 꺽고 하여 그저 동심대로 뛰어 놀던 기억만이 많습니다.
여름이면 너무나도 맑은 냇가에서 검정 고무신을 배 삼아 접어 물놀이를 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을이면 계곡의 돌 더미 밑에서 가재를 잡아 모닥불에 익혀 먹으면 빨갛게 변하는 가재의 색이 신비한 듯,
쳐다보며 맛있게 먹었었죠.
겨울에는 하얀 눈이 덮여 온 산이 밀가루를 뒤집어 쒸운 듯한 세상에 손,발이 얼어 터져라 썰매를 지치고,
친구들과 눈싸움으로 어린시절의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솔직히 어른들의 세계는 알고 싶지도 않았고, 알아 보았자 어린 나에게는 어떠한 힘도, 없었습니다.
나는 금성면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아버지가 사준 검정 고무신과 가방, 잊지를 못합니다.
정말로 순수한 시골아이 그 자체 였는데…. 고무신이 닳아질까 맨발로 다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금성국민학교는 학교 담장이 엄청 높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시멘트로 쌓여진 그 높은 학교 담벼락, 그리고 운동장에 둘러 서 있는 미류나무들…
학교 앞에 문방구에는 온갖 물건들이 즐비하여 군침을 돌게 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문방구 아저씨. 아주머니가 키우시는 돼지들, 학교 옆의 담벼락에 돼지우리가 있었습니다.
나는 마치 행사처럼 으레히 돼지우리를 지날 때는 1시간 여씩 우리에서 놀다가 갔습니다.
어미돼지가 누워 있고, 새끼 돼지들이 어미 젖을 열심히 빨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신기하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나는 어린시절 엄마의 젖을 먹고 자랐는지 기억이 희미합니다.
학교에서 집 까지는 솔찬히 멀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맨발로 다녀도 거뜬할 정도로 너무나 깨끗한 황토길 이었습니다.
봄에는 보리 내음새, 여름에는 물가에서 멱을 감으며 …. 동무들과 천진난만하게
자연속에 파묻혀 살았지요, 가을 벼베기 할때 메뚜기와의 치열한 전투는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간장에 쫄여 먹는 그 맛은 천하진미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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