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 일천여편의 다양한 장르의작품을 남긴 다작의작가 백릉 채만식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 들어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에 대처 하나가 올라 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채만식 소설 "탁류" 중에서- 이렇듯 군산이라는 항구 전체가 바로 채만식문학관이라 해도 과언은 아닌 듯 하다. 이번 채만식 문학관과 근대역사박물관 기행을 시작으로 다시한번 군산기행을 이번 겨울에 계획중에 있다.
지난 17일 황룡중학교 학부모 독서토론 모임에서 군산으로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그 첫번째 장소로 채만식 문학관! 중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등재된 "레드메이드 인생" 의 작품만이 머리에 떠올려질 뿐 다른 작품들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문학관 내부를 돌아보면서 당시에 일천여편의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남겼다는데에 실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한참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장, 단편 소설만 해도 300여편에 달하고, 기타 동화나 수필등 다양한 장르까지 정말 대단하다.
채만식(蔡萬植)은 본명이며, 호적명이다. 호는 백릉, 후반기에는 채옹이라 했으나 잘 사용치 않았다. 채만식을 "불란서백작" 이라 부르곤 했는데 그것은 돈은 없었지만 곤색 상의에 회색바지를 늘 단정히 입고, 중절모자까지 쓰고 다녀서 주위 사람들이 마치 불란서 백작같다고 하여 붙여준 것이다. 백릉 채만식의 출생지인 군산시 임피면 동상리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거져 있고 숲이 울창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성장기의 그에게 아름다운 정서를 안겨 주었을 것이다.
백릉은 내성적이며, 외곬의 면을 지니고있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자신의 신념과 사고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에겐 지극히 배타적이었고, 한번 잘못 본 사람이 있으면 끝까지 미워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의 주인공들은 사회의 악습에 대해 참을성 없이 그대로 욕설을 내뱉지만, 자신의 생활에 있어서는 대체로 귀족적이고, 신사적이었다. 고고하고, 솔직하며 고집이 세고, 직선적이며 아무하고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소유물을 질서정연하게 정돈하고 무엇하나 흐트러지게 놓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내 기억속에서 가물 가물한.... 레디메이드 인생....
신동아 (1934,5~7)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 사회주의의 실천적 지식인이 되고자 하는 실직상태에 있는 P의 삶을 통하여 식민지 지식인의 좌절을 풍자적이고 냉소적으로 그리는 작품으로 1930년대 한국사회가 지니고 있던 구조적병폐를 부각하고 있다. 특히 아홉 살 날 아들을 기성품 인생을 만들지 않기위해 학교 대신 인쇄소의 직공으로 취직시키는 마지막 대목은 무기력한 지식인의 자기비판적 태도라 할 수 있다. 당대인텔리들은 수요는 일정한데 무작적 공급되는 물량과 같은 , 시세없는 존재들이란 판단을 하고 잇는 것이다. 찾는 사람이 없는 물건, 이것이 P라는 인텔리가 처해 있는 현실이며 바로 이런 사람이 레디메이드 인생인 것이다.
호남선 철로의 지선으로 만들어진 군산선 철길은 1912년 3월에 개통된 철길이다. 이 철길의 개통으로 일제강점기 호남지방의 농산물들이 군산항에서 일본으로 수탈되었고, 또한 일본상품들이 내륙으로 쉽게 유통되어 우리 민족은 이 철길을 수탈의 철길이라 부르게 되었다.
[[소설 "탁류"에서 주인공 정주사는 식솔을 거느리고 째보선창으로 흘러 들어와 미두 (米豆,현물없이 쌀의 시세로 거래하는 투기)에 손을 댔다가 전재산을 날리고 하바꾼(전문투기꾼)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의 딸 초봉 역시 가세가기울면서 여러사람에게 유린되다가 사생아를 낳고 끝내 살인을 저지르기에 이른다. 1930년대 식민시대의 인간군상들은 그렇게 몰락과 파멸의 길을 갔고 비옥한 호남평야에서 수확된 쌀들은 군산항을 거쳐 고스란히 일제의 손아귀로 흘러 들어갔다. 그 때 밤낮으로 쌀을 실어냈다는 선창의 철도는 녹슨채 잠들어 있고 부잔교는 할일을 잃은 채 길손을 맞고 있다. 그래도 한때는 일제의 경제적 침탈기지로 흥성했던 곳이었지만 이제 낡은 부두는 숨쉬기 조차 버거운 듯 그저 탁류 속에 시름없이 누워있을 뿐이다.]]
[[채만식 선생이 가장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던 1930년대에는 많은 세태 풍자소설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채만식 선생처럼 자기 시대의 현실을 뼈저리게 고민하여 세태풍자 소설을 발표한 작가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의 풍자성은 무엇보다도 신랄함에 그 핵심이 있었다. 그의 이러한 풍자성은 1937년에 쓴 탁류(濁流)에 이르러 그 절정에 달한다. 사실 탁류라는 표현은 그의 작품 제목일 뿐만 아니라 그의 전체 작품의 분위기에 대한 키워드 라고 말할 수 있다. 나아가 그의 작품세계의 묘사된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한마디로 아우르는 단어라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 -채만식문학관 홍보 리플렛 내용중-
발걸음을 옮기면서 왜그런지 무겁게 느껴짐은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시는 그런일이 ... 아쉽다. 이곳을 방문하기전 그의 소설 "탁류"를 읽어 보는 건데...
문학관을 들어서면 보이는 채만식 선생님의 일대기와 그 암울한 시대의 군산의 여러 모습의 사진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천천히 ..
문학관 내부가 그의 명성에 비추어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49년의 짧은 생애에 비추어 볼때 일천여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전시관 내에는 그의 주요한 작품과 생전의 골방에서의 집필 모습, 군산의 역사적인 모습들을 둘러 볼 수 있다.
채만식선생은 1923년 [과도기]를 탈고하고 후에 문학사상을 통하여 1973년 8,9월호에 유작으로 발표, 그리고 1924년 단편 [세길로]가 춘원 이광수에 의해 추천, 조선문단에 발표됨으로써 문단에 등장, 타계하기 직전인 1950년에 이르기까지 30여년 동안 소설, 희곡, 평론, 수필등 천여편이 넘는 많은 작품을 저술하였다.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에 버금가는 다작의 작가로 현대문학사에서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여러 편의 불후의 명작을 남겨 일제강점기는 물론 근, 현대 문학사를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 크지 않은 1층 채만식 선생님의 작품 전시관을 지나면 2층으로 연결됩니다. 이곳을 올라가다 보면 계단 하나 하나에 채만식 선생님의 일대기가 적혀 있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의 다양한 시화 작품들이 즐비하게전시가 되어 있기도 하다.
2층 휴게실에서 바라다 보이는 금강하구! 저곳이 바로 탁류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재미있는 색칠하기 체험공간이 2층 휴게실 옆에 아기자기 하게 놓여져 있다. 함께 간 학부모님들도 마치 학생처럼 그리기 삼매경에 빠져 봅니다. 채만식 선생님의 소설 "탁류" 글씨, 일제강점기 식민지지배의 대표적인 금융시설 "조선은행" ,군산미곡취인소 속칭"미두장" 이곳은 그 시대 군산의 상징이며 치외법권의 공인된 도박장이었다. 군산미두는 일제가 호남농촌 자본을 노리는 식민지정책의 표본과도 같았던 곳이다. 바로 이 미두장이 소설 탁류의 주배경지 이다. 백릉 채만식 선생님의 얼굴사진, 이렇게 네가지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색칠하는 곳이다. 채만식 문학관에 들르면 반드시 해보길 권장 합니다. 그것들에 얽힌 것들을 생각하면서.. 시간되면 이곳들도 가보면 좋겠다.
누가 누가 색칠을 잘 하셨을까요?~~~ㅎㅎ하
저는 백릉 채만식 선생님을 요렇게 칼라풀한 불란서 백작님으로 변화시켰답니다.~~ㅎㅎ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우측으로는 이곳을 방문했던 분들의 다양한 색칠하기 표본들이 벽면에 붙어 있답니다.
저마다 다른 개성으로 색칠한 모습에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지요.
군산에 가시면 꼭 아래의 두가지 채만식 문학 답사 코스로의 기행을 하시길 권장 합니다. 다음번엔 탁류 답사길 꼭 돌아 볼것입니다.
1층 도서실겸, 펜글씨 체험 코너에 전시되어 있는 채만식 선생님의 대표 작품들! 탁류와 레디메이드 인생, 그리고 태평천하..까지 올 겨울을 넘기지 않고 읽어 보려 합니다.
채만식 문학관 앞의 당시의 "인력거"
군산으로의 문학기행을 떠나고자 하신다면 꼭~ 채만식 선생님의 대표적 작품인 탁류(濁流), 태평천하,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痴淑)을 반드시 읽어보고 가시기를 권장 합니다. 그리고 군산시 해망로에 위치한 근대역사박물관을 돌아보면 군산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가 고스란히 곳곳에 켜켜이 묻어있는 군산에서 그 시대의 아픔을 통해 두번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어서는 아니되겠다는 마음다짐을 자연스럽게 하게 됩니다. 역사는 시험지에서 정답 몇개를 알아 맞추어 점수를 높이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오늘과 내일을 있게 하는 훌륭한 가르침 입니다.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이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할 때 그 나라의 미래는 밝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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