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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유교적 전통이 어우러진 곳 익산 성당면 두동리의 두동교회

푸른희망(이재현) 2012. 12. 12. 06:00

남녀유별의 전통을 볼수 있는 ㄱ 자 예배당 전북 익산 성당면의 두동교회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회의 전래과정을 보여주는 두동교회(전라북도문화재 179호) 1929년도에 지어졌다, 남녀칠세 부동석의 남녀 유별이 무너지던 1920년대에 오히려 ㄱ자 예배당을 지으면서 한국의 토착유교사상을 존중한 교회라고 한다.  강단의 좌우에 남녀석을 따로 배치하여(오른쪽은 남자, 왼쪽은 여자) 서로간에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 강단의 중앙 기둥에 휘장까지 둘러  앞자리에서도 행여나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고 하니 놀랍지요.  출입문도 따로 내고,  더 놀라운 것은 남녀의 예배당의 크기를 똑같이 지어 남녀평등 사상도 내포 되어 있다고 한다. 현재 교회 내부는 80년전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장마루가 깔린 마룻바닥, 의자와 강단, 풍금, 일본순사들의 검문을 피해 은신처로 쓰던 마룻장,등이 예전 그대로다.


함석지붕 위에 교회보다 더 오랜 나이를 느끼게 하는 소나무의 빛 바랜 솔잎들이 왠지 정겹다. 사실 이 소나무가 교회를 지어 놓고 어린 소나무를 가져다 심었다고 하니 교회보다 더 나이를 많이 먹은 것이다.


두동교회의 종탑 입니다.  이것은 두번째 종이라 합니다.  

첫번째는 일제에 의해 불타버렸고, 2007년도 종탑복원사업으로 만들어졌다는군요.

물론 실제로 사용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익산의 여행에  동행했던 익산군청 문화관광과 "최 인경" 선생님의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에 따르자면  두동교회는  이 마을의 거부였던  "박 재신"씨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고 한다.  이마을 사방팔방 삼십리안에서 이 분의 땅을 밟지 않고 지나다닐수 없다고 할 정도로 부자였다고 한다.  악덕지주가 아닌 사재를 털어 학교도 세우고, 어려운 마을 주민들의 세금도 내주고, 기근이 왔을때도 구제미도 나누어주는 칭송이 자자했다고 한다. 마을 내에 비석이 있다고 하는데 보질 못하고 와서 아쉽다. 


박재신의 아내분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예배를 보러 다녔는데 자식이 귀했던 박재신은 아내의 임신이 믿음의 선물이라 하며 사랑방을 예배소로 내어주었다. 이때가 바로 1923년 5월 18일, 이때의 첫 예배가 두동교회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런데 1929년 그의 아들이 병으로 죽자 상심이 너무 커있었고, 그 와중에 집안 어른의 출상일이 주일이라 3일장은 안되고 4일장으로 해야 한다는 교회 전도사와의 마찰이 발생하여 이때부터 자기집에서 예배를 허락하지 않았다고한다.


그리하여 교인들은 유일하게 마을에서 그의 땅이 아닌 지금 이 자리에 교회를 짓기로 한다. 하지만 기둥으로 쓸만한 재목이 없어서 막막해 하는데.. 때마침 안면도의 소나무를 싣고 가던 배가 군산 앞바다에서 침몰하여 두동리 근처 성당포구까지 떠내려 왔다 그때 그 소나무들을 싸게 사들여 100여평의 땅에 두동교회를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최 인경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 적으면서 생각나는 것이 "기적같은 안면도 소나무"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두동교회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두동교회 뒤쪽에서 보면 동쪽과 북쪽의 남녀신도들의 출입문과는 별도로 서쪽과 남쪽의 벽면에 남녀 인도자들의 출입문이 따로 있다. 


강단의 왼쪽편의 여자신도들이 예배를 보던 곳입니다.  천장의 서까래와 대들보가 그때 그시절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모두 담고 있는듯 세월의 무게를 느낄수 있네요. 마룻바닥은 오래 보존을 위해 페인트칠이 되어 있어서 반질반질 합니다.



설교강단 밑에는 제법 여러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곳은 오른쪽 공간인 남자신도들의 예배당 입니다.  정말 두 공간의 크기가 똑같아 틀린것이 없더라구요. 창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이 참 따사롭습니다. 


기적같이 성당포구로 떠내려온 그 안면도 소나무~ 대들보와 서까래들! 정말 신비하지요.

 정말 신도들의 강렬한 믿음을 들어 주셨던 것일까요?


지금은 두동교회의 왼편으로 현대식 새교회가 웅장하게 들어서 있답니다.  그래도 가끔씩 기념할 일이 있을때는 두동교회에서 예배도 보겠지요!


두동교회 건물을 뒤로하고 마을길로 나오다보면 보건 진료소 앞에 작은 우물이 하나 보입니다.  지금은 워낙 집집마다 수도시설이 되어 잇어서  사용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60년대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졌나 봅니다.  특이한 것은 우물 좌우로  마치 입식빨래판처럼 보이는 시설이 보입니다.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떠서 물을 부어 놓고는 서서 빨래를 했던 곳인가 봅니다. 




두동교회로 들어오는 마을 입구  주택 담벼락에는 아이들 동화같은 벽화들이 그려져 있어 친근함을 더해 줍니다.


이번 익산여행에 꼭 칭찬해 드리고 싶은 분이 있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익산투어에 아침부터 끝날때까지 동행 해주신 익산군청 문화관광과의 "최 인경" 선생님 입니다.  작년5월부터 이러한 여행을 전국으로  십여회 다녀 보았지만 보통은 그 지역의 문화해설사님들이 수고를 하시는데.. 버스로 이동하는 내내 가는 곳마다 유창한 역사이야기들을 해주셨답니다. 해당 공무원께서 하루종일 이리도 지역내의 역사,문화, 유적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시고 열성적으로 설명을 해주시는 분은 처음 보는 듯 합니다. 제일 뒷 좌석에 앉아  들르는 곳마다 구구절절 유머와 곁들여 말씀하시는 내용을 차분히 받아 적었답니다. 


정말이지 최 인경 선생님의 열정과 익산을 사랑하시는 마음에 감동을 받았답니다. 음악에 앵콜이 있듯이, 익산을 가게 된다면 아마 다시 이분께 설명을 듣고 싶어집니다.~ 정말 수고하셨고, 감동입니다.


1010년~1920년대에 집중적으로 지어진 ㄱ 자형 교회는 남녀칠세부동석, 남녀유별등의 조선의 유교전통 속에서 여성에게 복음을 전파하려는 신앙인들이 고안해 낸 절묘한 작품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익산의 두동교회, 김제의 금산교회와 더불어 두 곳만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