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농사에 정신없는? 딸기농부 그래도 당일치기의 짧은 남도여행 그 첫번째 다산초당
2월 28일, 모처럼의 시간 쪼갬으로 봄 기운 가득한 남도의 멋스러움을 간직한 강진을 다녀 왔습니다. 물론 혼자는 아니었구요. 장성농업기술센터에서 농업인 교육을 수료한 농민들이 어울려 봄기운을 만끽하고 돌아 왔답니다. 열흘이 넘어 글과 사진을 올립니다. 딸기들과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날이 6월까지는 계속 되어야 합니다. 여행을 즐기는 딸기농부에겐 금쪽같이 귀하고 즐거운 여행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그를 아끼던 정조가 세상을 떠난 뒤인 1801년 (순조 원년) 신유박해에 뒤 이은 황사영백서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유배, 사의재 고성사 보은산방 등을 거쳐 1808년에 외가(해남윤씨)에서 마련해 준 이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산 정약용이 18년의 강진 유배생활중 10여 년간의 안식처가 되었고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여러 저서를 집필했던 곳이다. 십여년이 넘는 시간들이 흐른뒤에 다시 오르는 다산초당이라 무척 궁금하기도 했다. 대형버스가 예전에는 없던 다산유물전시관에 들러 관람을 하고 이 방향에서 올라갔던 곳이라 낮설지만 황토길과 움푹 패인 고개의 신비함도 여행길에서의 즐거움 이었다. 20여분 정도 산속 오솔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다보면 92개의 돌계단을 오르고 그 끝에 다산초당이 자리하고 있다.
오르는 길의 끝자락에는 정약용 선생의 성품을 말해주듯 석송과 대나무 숲이 어우러져 있다. 중간 중간 뿌리째 드러나 심하게 뒤틀린 고목이며 발길 닿은 곳마다 신체의 굵은 혈관처럼 드러난 뿌리들...짓밟히고 짓이겨져도 살아남는 민초들의 삶이 그것이었으리라 짐작이 간다. 처음 방문하는 분들은 초당? 이라 초가집을 연상하지만 1957년 강진 다산 유적보존회에서 허물어진 초가를 대신 정면 3칸, 측면 1칸의 기와집으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다산 유물전시관을 지나서 오르다 보면 간과 신장에 좋은 기능을 함유하고 있는 두충나무숲길이 또 다른 재미와 신비를 준다.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고갯길... 움푹 패이게 길을 낸 곳이 풍화작용으로 좌우의 거목들의 뿌리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 깊은 계곡을 지나는 듯 숙연해진다.
초당에 오르면 다산초당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보물인 다산 4경이 있다. 고적한 유배생활의 정취가 서려있는 정석, 약천, 다조, 연지석 가산은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다산 실학이 구상되던 도량이요, 산실이다. 초당에 이르는 길에는 수백 년된 적송들의 뿌리들이 서로 뒤엉켜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는데 시인 정호승은 이 길을 뿌리의 길이라 노래 하였다.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산 길
지상에 드러낸 소나무의 뿌리를 무심코 힘껏 밟고 가다가 알았다.
지하에 있는 뿌리가 더러는 슬픔가운데 눈물을달고
지상으로 힘껏 뿌리를 뻗는 다는 것을
지상의 바람과 햇볕이 간혹 어머니처럼 다정하게 치맛자락을 거머쥐고 뿌리의 눈물을 훔쳐준다는 것을 나뭇잎이 떨어져 뿌리고 가서
다시 잎으로 되돌아 오는 동안 다산이 초당에 홀로 앉아 모든 길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어린 아들과 다산초당으로 가는 간길을 오르며
나도 눈물을 닦고 지상의 뿌리가 되어 눕는다.
산을 움켜쥐고
지상의 부리가 가야할 길이 되어 눕는다.
누구의 소망을 담아.... 그 소망 꼭 이루어지길!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길! 유난히 삐쭉 삐쭉 튀어나온 돌들이 많았다. 고난의 길.....
제일 먼저 반기는 "서암" 입니다. 제자들의 유숙처, 차와 벗하며 밤늦도록 학문적인 토론을 논했던 곳! 일명 "다성각" 이라고도 불리는데 1975년 복원하였다 합니다. 저 오른쪽 담벼락 중간에 걸려있는 그림은 초의선사와 다산 선생이 1812년 음력 9월 12일에 월출산을 구경하고 인근의 백운동에서 하룻밤을 머문뒤 만든 시화첩 [백운첩]에 그린 그림이다. [다산초당도]
언제봐도 정겨운 외가집 사랑방 같은 곳! 참으로 오랜만에 와보는 다산초당! 가슴에 벅차오름은 바쁘다는 핑계로 쉬이 하지 못했던 여행에 대한 즐거움과 잊고 지낸 오랜 벗을 만난 듯 그 회포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초당 옆의 연못을 지나 남동쪽으로 40여보 거리에 보이는 동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기와집, 다산 동암이라 현판에 판각된 글씨는 다산 선생의 친필을 집자해서 모각된 것이라 합니다.
다산초당에 가면 꼭 봐야 할 다산초당의 사경! 정약용 선생의 손길이 그대로 느껴지는 곳이다. 그 첫째가 초당 서편 뒸쪽의 해배(解配)를 앞두고 발자취를 남기는 뜻으로 선생께서 직접 "정석"(丁石)이란 글씨를 새긴 정석바위가 있다. 아쉽게도 위쪽으로 조금만 오르면 되었는데.. 일행들과 함께 움직이다보니 사진에 담질 못했다.
다산초당의 제 2경인 "약천" 이다. 처음에는 물이 촉촉히 젖어 있던 것을 선생께서 직접 파서 수맥을 잡아 만들었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항상 맑은 물이 솟아나왔다고 한다. 아쉽지만 지금은 마실 수 없는 물이 되었다.
다산선생이 이곳에 오기 전부터 있던 이돌은 차 달이는 부뚜막으로 사용! "다조"라 한다. 차 달이는 부뚜막이란 뜻이다. 주위에 야생하는 차잎을 따다가 그늘에 말려 솔방울로 불을 지펴 차을 끓였던 편평한 돌이다. 다산초당의 제 3경 다조!
연못 중앙의 석가산! 다산 선생께서 바닷가의 돌들을 직접 가져다가 만들었다고 한다. 연못 가운데 조그만 봉우리를 쌓아 "석가산" 이라 하고 나무홈통을
이용하여 산속 물을 떨어지게 만들어 "비류폭포"라고 이름했다. 이 연못에 백련을 심어 잉어를 길렀으며 유배에서 풀려난 후 제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잉어가 잘
자라는지를 묻는 구절이 담겨 있어 선생의 각별한 사랑을 가늠하게 한다. 다산 초당의 제 4경인 "연지석가산!"
연못의 연지석가산 바로 옆에 있는 한 쌍의 물개형상을 한 바위! 이것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래서 ..... "천만년해로 바위" 라고 지어 본다.
하늘을 찌를듯 곧추 서 있는 소나무의 절개가 다산 선생의 성품을 따르듯 신비롭다.
다산초당에서 또 하나의 즐길 수 있는 붉은 동백의 화려함! 아직은 이른 봄탓인지 동백목 저 높이 햇살 받은 꽃봉오리 하나 툭~~ 터져 세상을 맞는다.!
오솔길 위에 떨어진 동백꽃의 자태가 가히 황진이도 울고갈 아름다움이다. 황금빛 꽃가루 가득 물고 있는 화려함속에 지고지순한 여인네의 향기는 나만의 느낌이 아닐터..
다산초당 앞 배롱나무 중간에 새둥지! 금슬 좋은 부부새의 안식처... 날이 풀리면 고개를 내밀려나!
다산초당 현판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친필을 집자해서 모각한 것이라 한다.
초당 중앙에 다산 선생의 초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학자풍의 단아하신 영정 이군요^^
이런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한옥 한채 갖고 싶다.~ 그럴수 있으려나...
동암에서 조금 더 언덕을 올라서면 보이는 천일각 이다. 목조건물로 흑산도로 유배된 둘째 형 정약전을 그리며 심회를 달래던 곳으로 정면과 측면이 한 칸씩인 누각이다. 이곳은 날씨가 좋으면 멀리 완도쪽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라 한다. 형에 대한 사모치는 그리움을 달래던 곳!
천일각을 왼편으로 작은 오솔길이 나 있습니다. 바로 백련사 가는 오솔길 입니다.
찌뿌듯한 하늘이 맑게 갠 어느 봄날, 냉이 밭에 나비가 팔랑거리자 다산은 자기도 모르게 초당 뒤편 나무꾼이 다니는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들판이 시작되는 보리밭을 지나며 그는 탄식했다. "나도 늙었구나. 봄이 되었다고 이렇게 적적하고 친구가 그립다니". 백련사에 혜장선사를 찾아 가는 길이었다. 벗될 만한 이가 없는 궁벽한 바닷가 마을에서 혜장은 다산에게 갈증을 풀어주는 청량제 같은 존재였다.
혜장은 해남 대둔사 출신의 뛰어난 학승이었다. 유학에도 식견이 높았던 그는 다산의 심오한 학문 경지에 감탄해 배움을 청했고, 다산 역시 혜장의 학식에 놀라 그를 선비로 대접하였다. 두 사람은 수시로 서로를 찾아 학문을 토론하고 시를 지으며 차를 즐기기도 했다. 혜장선사는 비 내리는 깊은 밤에 기약도 없이 다산을 찾아오곤 해서 다산은 밤 깊도록 문을 열어 두었다고 한다.
다산과 혜장이 서로를 찾아 오가던 이 오솔길은 동백 숲과 야생차가 무척 아름답다. 그러나 이 길에서 가장 즐거운 것은 친구를 찾아가는 설렘일 것이다.
보고싶은 친구를 가진 기쁨, 친구를 찾아가는 길의 행복!
-강진군청
오솔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백련사로 가는 길과 해월루로 가는 세갈래길이 나온다. 하늘의 달과 바다가 어우러진 듯 조용히 감상할 수있는 누각이 세워져 있다. 해월루에 올라서면 구룡포 강진만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속세의 온갖 시름 다 털어버리고 가고 싶은 곳이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바다 깊은 곳으로 스멀스멀 사라져 버리게 말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백련사!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손길이 그대로 느껴지는 곳! 다산초당에서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총 600여권의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긴 다산 선생의 숨결을 느끼고 갑니다.
백련사로 넘어가는 그 길에 거대한 동백의 숲이 울창합니다. 꽃피는 춘삼월이 지날 때면 붉은 피를 토하듯 검붉은 꽃들의 향연이 참으로 아름다울 듯 합니다.
'◀여행이야기▶ > 여행야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푸른희망농장 딸기농부 앵글에 담은 광주랑블로그기자단 발대식 (0) | 2013.05.03 |
---|---|
가고 싶은 대구 보고 싶은 대구광역시 초청 익사이팅 대구즐기기 여행블로거기자단 팸투어 (0) | 2013.03.18 |
[익산여행]벗꽃이 필때 찾으면 더욱 운치 있을 것 같은 익산 백제왕궁터 왕궁리오층석탑 (0) | 2013.01.26 |
[백양사설경]임진년 12월 끝날에 달려가 본 하얀 눈가루를 쏟아 부은 듯한 백양사의 눈부신 설경 (0) | 2013.01.02 |
기독교와 유교적 전통이 어우러진 곳 익산 성당면 두동리의 두동교회 (0) | 2012.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