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8일엔 작일 저녁부터 소복히 내려 앉은 눈들이 너무 탐스러워 카메라를 들고 필암서원을 찾았습니다.
이미 익히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전남 장성의 대표적인 사액서원 이지요. 하서 김인후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건축물로 선조 23년에 장성읍 기산리에 세워졌으나 1597년 정유재란때 병화로 소실되었으니 1624년 인조때 황룡면 증산동에 재건, 수해 피해가 우려되어 유생들의 이건 상소가 받아 들여져 1672년 현종 13년에 지금의 필암리로 이건 되었다 합니다.
오늘은 필암서원의 구석 구석을 좀 살펴 보고자 합니다.
장성군 문화관관 홈페이지 바로 가기 http://tour.jangseong.go.kr/index.sko
필암서원 앞쪽에 건립된 유물전시관 안에 조형된 필암서원 모형 입니다.
확연루
필암서원의 입구이자 대문으로 문루 형태로 지어졌으며, 1층은 출입문, 2층은 유생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었다지요.
영조때 두번 중수하였고, 우암 송시열의 친필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확연루의 네 귀퉁이 귀공포의 매서움이 학문을 닦는
유생들의 마음가짐을 바로 잡는데 엄숙함이 풍기어져 옵니다.
건너편에 위치한 유물전시관
전시관 뒤쪽으로 보이는 집성관
담벼락 너머에는 글읽는 소리 가득 했었겠지요~
확연루의 이층을 돌아 봅니다.
청절당 옆의 관리사에 내린 눈이 고풍스러운 풍경을 드러내는군요
확연루 이층에서 바라본 유생들의 학습강당으로 사용되어졌던 청절당 입니다.
드디어 청룡을 찾았습니다.~~
마치 꿈틀거리는 듯한 황룡과 청룡의 몸체 입니다.
바로 여기에 황룡이 숨어 있습니다.~~
확연루의 천장에 그려 넣어진 사군자
사계절 푸른 솔과 열매 풍성한 포도 송이, 모란으로 보이는 꽃도 보입니다.
단청의 화려함에 넋을 잃고 사진을 담습니다.
확연루 지붕의 좌우 대칭이 신비할 정도로
장엄 합니다.~ 오래 오래 잘 보존되어 후세에 훌륭한 역사 교육 문화재가 되었으면 합니다.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확연루
지붕에 눈길을 끄는 항아리가 올려진 작은 건물 전시용으로만 쓰이는 변소 랍니다.
잠시 해가 비추니 소복히 내려 앉았던 눈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기시작 합니다.
청절당의 뒷 모습 입니다.
여러개의 문들을 활짝 열어놓으면 마치 유생들의 낭랑한 글읽는 소리가 울려 퍼질 듯 합니다.
인종대왕이 하사한 목죽도가 보관되어 있는 경장각 입니다.
정조대왕의 친필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경장각 뒤로는 내삼문을 지나면 우동사로 하서 김인후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입니다.ㅣ
목죽도 하단에는 김인후 선생의 자작시가 적혀 있습니다.
뿌리 가지 잎새 마디, 모두 지극히 정교하고/
돌 같은 우정이 그 안에 있네/
조화로운 성신(聖神)을 깨닫기 시작하니/
하늘과 땅이 하나되어 거스름이 없어라
경장각 네 귀퉁이있는 용머리 귀공포
유생들의 학습 강당으로 사용되어진 청절당
정면 5칸, 측면 3칸의 15칸구성으로 강당은 9칸, 좌우 세칸씩은 협실로 이루어져 있지요.
옛 진원현의 객사 건물을 옮겨 지었다고 합니다. 청절당의 처마 밑에는 봉계 윤봉구가 쓴 필암서원 현판이 있고,
대청마루에는 동춘당 송준길 선생이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동쪽의 진덕재 동재 유생들이 기거하던 곳입니다.
특히 진덕제의 넓은 마루가 참 마음에 듭니다.
마당이 넓은 집에 이런 한옥 한채 짓고 사는 것도 참 풍류가 있겠지요~ 꼭^^
서쪽의 숭의제
마루에 걸터 앉아 함께 수학하는 유생들과 정치, 사회, 경제를 논하며 담소를
나누는 5백여년전의 사람들이 마치 보이는 듯 아주 고즈넉 합니다.~
햇살이 강해지니 수북히 쌓였던 지붕의 눈들이 봄날 소리없이 녹아내리듯 방울 방울 구슬로 변하여
처마 밑으로 한 없이 떨어 집니다.
진덕제와 숭의제 현판은 동춘당 송준길 선생이 쓴 것 입니다.
동제인 진덕제에는 원생들중 선배들이, 숭의제는 후배들이 기거했던 곳이라 합니다.
확연루를 떠받치고 있는 16개의 기둥 입니다.
자연석(막돌) 위에 세워진 아름드리 두리기둥이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습니다.
언제 보아도 당당하고 늠름한 기세를 느낄 수 있는
확연루의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장성에서 인물 자랑하지 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말고, 여수에서 돈 자랑하지 말라]는 등 남도 각 고을의 지방색이 짙게 깔린 속언이 지금껏 이어진다.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 1510~1560)는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된 우리나라 18성현(十八聖賢) 중 호남 사람으로는 유일무이한 분이시다. 그래서 호남에서는 「호남의 유종(儒宗)」으로 모셔진다. 이 하서의 고향이 바로 장성(長城)이며, 그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있는 서원이 바로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에 있는 필암서원(筆巖書院)이다. 자긍심이 강한 장성 사람들이 [이곳에서 인물 자랑하지 말라]고 공공연히 큰소리 치는데는 하서라는 큰 인물이 배출돼 호남의 성리학을 대표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용출처-다음검색
장성에는 필암서원 외에도 고산, 봉암, 추산, 학림, 모암 등 여러 서원이 있어 선비의 정신을 면면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가보지 않은 나머지 서원들도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돌아 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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