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면의 요월정엔 중국의 팔선(八仙)중의 한 사람인 여동빈(呂洞賓)이 악양루에서 지은 시의 마지막 구절이 있다.
장성 지역에 눈이 오면 아름다운 곳이 있습니다. 바로 1550년 명종때 공조좌랑 김경우가 지은 요월정의 설경과 동시대의 호남의 문신이며 대학자인 하서 김인후 선생님의 필암서원이 있습니다. 사계절마다 다른 멋과 운치를 느낄 수 있지만 나는 겨울, 특히 백설이 난무하는 요즘에 가보면 정말 감탄사가 그칠줄을 모르는 곳입니다. 요월정엔 배롱나무의 꼬불꼬불한 가지를 따라 차분히 내려앉은 백설화의 운치가 극도의 미의 여백을 보여 주거든요. 흑(나무가지)과 백(설화)의 요묘한 조화라고나 할까요! 또한 이웃해 있는 백여 그루가 넘는 소나무들의 절개 또한 장관입니다.
요월정으로 오르는 입구에는 언제나 용맹스러운 황룡 두 마리가 은빛 여의주를 물고 수문장을 톡톡히 하고 있지요.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백년 아니 수백년을 넘게 동고동락하던 고송의 부러짐!
장구의 세월을 잘도 견디어 왔는데...이번 연이은 세번의 태풍이라는 녀석이 처참하게도 두동강을 내어 버렸어요. 안타까워요
소담스럽게 내리는 눈을 늘 그렇게 수백년을 맞고 있습니다.
그런데 ....매번 요월정에 오르면서 보게 되는 현판 입니다. 늘 궁금했거든요. 현판(편액) 오른쪽 상단의 나뭇잎 낙관과 그 속에 쓰여 있는 한자???? 모두 일곱자로 구성된 한자어 입니다. 몇 글자는 알겠는데.. 도무지..그래서 페이스북에 이 사진을 올렸더니 ...와우~~ 저희 마을에 사시는 아저씨께서 댓글을 주셨습니다.
바로 중국의 당나라 시대의 8선중에 한 사람인 "여동빈"의 싯구 입니다.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 송나라때 중앙정치무대에서 이름을 날리던 등자경이라는 인물이 파릉군 태수로 재직시절에 당나라 때 연국공 장열(張說)이 세운 악양루가 낡아 보수를 하고 이를 축하하기 위해 연회를 열던중 소위 "화주도사"라는 사람이 등자경에게 시 한수 적어 보내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 시중에 마지막 구절에 들어있는 내용 입니다. 내용출처 -무소정님의 블로그 글중에서 일부
朝游東海暮蒼梧 조유동해 모창오 아침에 동해에서 놀다가 저물어 창오(광서성)으로 간다.
袖裏靑蛇膽氣粗 수리청사 담기조 소매속 들어있는 단검(푸른뱀)은 담력과 기력이 호쾌하다.
三醉岳陽人不識 삼취악양 인불식 악양루에서 세번 취했으나 사람들은 내가 여동빈인것을 모르는데
郞吟飛過洞庭湖 랑음비과 동정호 낭랑히 시를 읊으면서 동정호를 날아서 지나갔네
이를 본 등자경은 사람을 보내 그 화주도사를 모셨다. 예을 취하고 화주도사에게 성함을 여쭈니 성은 여요, 이름은 암 이라! 하고는 큰소리로 웃으면서 바랍처럼 사라졌다고 하네요 그때서야 등자경과 그의 문사들은 그가 여동빈 인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이 일화를 기리기 위해 악양루 옆에 삼취정(三醉亭)이라는 정자를 세웠다고 합니다. 이 삼취정은 청나라 건륭 40년(1775년)에 세워졌고, 그 곳에는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는 여동빈의 조각상과 그가 쓴 시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특히 앞의 시에서 나온 "수리청사 담기조"에서 靑蛇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고사가 전해져 온다는군요. 오래전부터 파릉현(현재 악양) 성 남쪽 백학산에는 큰 호수가 두개 있었는데, 그 호수 가운데 이무기가 있어 사람들에게 피해가 컸었다고 합니다. 이곳을 지나던 여동빈이 법술로 이무기를 다스려 단검으로 만들어 항상 소매속에 지니고 다녔다고 하는 고사 랍니다.
그러면 과연 이 요월정(邀月亭)은 글씨는 누가 썻을꼬? 또 다른 글씨체의 현판이 두 개나 있는 것인지? 이것 또한 요월정을 관리하시는 관리분 전화를 수소문해서 전화를 드려 봤지만 ....
그래서 황룡마을에 사시는 93세의 제일 어르신께 여쭈었더니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전 현재 위치보다 숲속 안쪽으로 위치한 곳에 요월정이 있었는데.. 1811년 후손 김경찬이 1차로 중건하고, 1925년에 후손 김계두가 중수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이때 중수를 기념하여 다시 쓰셨답니다. 바로 아래의 낙관은 "홍 두섭" 이라는 인물로 인명사전 검색해 보니 1830년대 통훈대부 전행장성도호부사를 지낸 홍 병위의 아들로 고종 10년 1873년 식년시에 응시하여 급제한 정3품의 벼슬을 한 인물로 조회가 되더라구요. 아마도 당시에 홍 두섭이라는 인물이 작성한 것으로 추측이 될 뿐 입니다. 현판에도 그의 이름과 낙관이 뚜렷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도 그러합니다.
이름위의 네 한자는? 그럼 뭘 뜻하는가?
자꾸 궁금해지는것은 참~~~ 역시 페이스북의 지인들께 질문을 드렸더니.... 신미모추?, 신미만추? 등의 답변이 왔습니다. 이대로 해석을 하자면 .. "신미년 어느 가을에 홍두섭이라는 사람이 요월정에 들러 이 현판의 글씨를 남긴다" 정도가 아닐까~~ "
내용추가 신미맹추[辛未孟秋] "신미년 가을이 시작되는 날" 로 해석이 됩니다.
더 좋은 자료가 있으시면 댓글이나 전화 주세요~~
아래의 현판은 정면에서 볼때에 좌측에 걸려 있는 또 하나의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1925년도 중수하면서 그 기념으로 만든 현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글씨의 주인공은 당췌 알수가 없네.....에효 누구 아시는분?
낙관이 있기는 한데.....영 알수가 없네~~ 유성??? 이름 아니면 성과 외자 이름?
해결] 견운[肩澐]서[書] 아마도 글쓴이의 호로 보입니다.
이 모든 궁금증을 뒤로 한채 마루에 걸터앉아 배롱나무의 절경을 보는 기분은 참 좋습니다.
살며시 요월정의 방문을 열고 안에서 내다 보는 바깥의 풍경! 글읽는 소리가 들리시나요^^
헤헤! 늘 내부가 궁금했는데... 제일 오른쪽 여닫이 문이 신기하게도 열려 있다. 그래서 들어가 보게된 요월정의 내부 사진 입니다. (후손님들 죄송혀유, 문짝 고치셔야겠어요) 가끔씩 내부를 들여다 볼수 있게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당 대의 명사인 하서 김인후 선생, 고봉 기대승, 송천 양응정, 문곡 김수항 선생등의 글들이 현판에 새겨져 오랜 세월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요월정의 최초 건립자인 김 경우의 9세손인 김 경찬(1796~1819년)이 요월정을 중건하면서 빼어난 경치의 요월정을 찬미하면서 지은 시입니다. 내용출처-사이버황룡면카페에서
百日花紅度幾秋 重光重喜且重修
朝鮮第一黃龍里 夜月更三白鷺洲
好個東山還舊主 超然南國有名樓
鳳凰己去臺空在 安得詩仙與共遊
백일홍꽃 붉어서 몇 가을을 지냈는고 세월이 지나고 또 지나서 집을 고치는도다
조선제일 황룡리요 달 밝은 깊은 밤에 백로 노는 물갓이라
좋은 동산에 옛주인이 돌아오니 남쪽의 유명한 누각이 더욱 뛰어나구나
봉황은 이미 떠나고 집은 비어 있으니 어느 때나 신선을 만나 함께 놀아 볼까
이곳은 구들장이 있는 방으로 아쉽지만 비닐장판과 천장이 널판지와 도배지로 보수되어 그 옛스러움이 없어졌네요. 이곳에 기거하지도 않을 것인데 오랜 옛것을 살리지 못하고 변화된 것이 실로 안타깝습니다. 지금이라도 천장부분은 다시 보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우리의 전통 건축은 한 겨울에 그 멋의 진가를 드러내는 듯 합니다.
배롱나무의 설경터널을 지나노라면 자박 자박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기분은 한결 날아갈 듯 하지요.
아무도 지나지 않은 길을 걷는 즐거움은 상상 그 이상 이랍니다.
한 여름 백일홍 낙화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 백설이 되어 온 세상을 덮습니다.
어디선가 포로로~ 날아 드는 새 한마리에
읊조리게 되는 시 한 구절~
"수백년의 세월속에 낡아도 옥수슬 처럼 빛이나는
명현들의 낭랑한 글읽는 소리! 억겁(億劫)의 세월을 잘도 견디었구나"
이곳에 찾아온 그대는 누구인고?
아무도 반기는 이 없어도 잘 익은 탁주 한사발 줄테니
꼬꼬리 같은 그대의 목소리로 한번 읊어 보시게나~
배롱나무의 터널을 지날때면 나는 신선이 된다.
오래전에는 그 깊이가 무려 명주실 세뭉치 정도를 풀어도 끝을 모른다던 황룡강이
황룡강의 원 줄기가 끊기고 지금은 작은 하천으로 변한지 오래 입니다.
임진왜란때 많은 부녀자들이 정절 아니면 죽음을 선택한 요월정의 낙화암!
옛 명현들의 아름다운 싯구들을 감상했으니 절로 기분이 정화되는 느낌 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고장에 훌륭한 문화재들이 잘 보존이 되어 대대손손 그 빛남이 함께 하기를 바래 봅니다.
설경이 천하일품인 황룡면의 요월정에서 다가오는 2013년의 새 마음을 차분히 마음에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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