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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여행]시월의 마지막 날 찾아간 강진 무위사의 국보 13호인 극락보전에 빠지다.

푸른희망(이재현) 2013. 11. 1. 06:00

10세기초에 창건된 천년고찰 강진 무위사

국보 제13호인 극락보전의 외부는 단아하고 소박하지만 내부는 불화보물로 화려한 극락세계 



강진 무위사의 극락보전을 보기 위해 달려왔다.  단아한 듯 소박한 외부와 아미타여래삼존불상과 아미타여래삼존불화 및 수월관음벽화 등 화려한 불화로 마치 극락세계로 중생들을 인도하는 불교의 정신이 오롯이 느껴지는 곳이다.  무위사적에 의하면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고  삼국통일후 875년[헌강왕]도선국사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하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905년[효공왕]이후 선각대사 형미스님이 중창한 10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무위사는 고려초 선종사찰로 유명하였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수륙사로 유명, 즉 죽은 영혼을 달래주는 수륙재[불교에서 음식을 육상과 수중에 뿌려 외로운 혼령이나 아귀들에게 베풀어줌으로써 고뇌를 제거 하는 법회]를 행하였던 사찰이었떤 만큼 중심건물은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여래불을 모신 극락보전인 것이지요.


현재 남아있는 건물중 가장 오래된 것은 극락보전으로 우리나라 조선시대 불교 건출물 중에서도 초기 형태에 속한다.  눈여겨 볼 것은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으로 지어진 극락보전의 단아함과 소박한 건축미이다. 특히 극락보전 측면의 기둥과 보가 만나 이루는 공간불할의 절제된 아름다움도 중요한 감상 포인트라고 합니다.  이러한 외부와 달리  서방 정토 극락세계를 묘사한 화려한 건물 내부는 물론 조선 초기 불교 미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불상과 불화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지요. *[주심포] 전통목조건축에서 공포의 일종으로 주로 기둥 바로 위에 받쳐진 형식을 말한다. 


주차장이 인근이라  바로 보이는 일주문이 시원스럽게  우뚝 솟아 있습니다.  

저 뒤로는 월출산 자락이 울긋 불긋 가을 색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는군요.



일주문을 지나면 사천왕문과 누각, 종무소 건물을 또 지나는데 작은 계단을 올라서면 보이기 시작하는 국보 제 13호의 극락보전 건축물 입니다.  정말이지 외부 모습은 소박한 전통목조 건축물 입니다. 



우측으로 상당히 오래 되었을 법한 수령의 나무가 마치 수문장처럼 우뚝하니 서 있습니다.


극락보전 앞의 배례석


극락보전 앞마당에 세워진 당간지주[불화를 그린 깃발을 세워 두던 기둥]

극락보전 목조건물과의 넓이가 비슷한 것으로 보아 당시엔 엄청난 법회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간지주 구멍을 통해 바라본 무위사 삼층석탑


무위사 삼층석탑 뒤편으로 보이는 건축물이 성보박불관[벽화보존각]

이곳에는 극락보전의 아미타여래삼존불화와 수월관음도를 제외하고 27점의 벽화가 소장되어 보존되고 있다.

이곳엔 극락보전의 외부 벽면에 그려진 27점의 벽화를 오래도록 후세까지 보전하기 위해 보존각을 건립하여 

보관중인 것으로 압니다.  처음 입구에는 아미타불, 지장보살, 관세음 보살님의 커다란 사진이 걸려 있더군요.


극락보전의 목조건물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관란 포인트~ 주심포 양식


전면에 6개의 기둥과 후면의 6개의 기둥에 주심포 양식을 볼 수 있다. 

지붕의 하중을 기둥으로 전달하기 위한 목조건축의 한 양식이라고 합니다. 


아미타여래삼존불상[보물1312호]과 후면의 아미타여래삼존불화[국보 313호] 가운데가 아미타불, 왼편으로 관세음보살, 오른편으로 지장보살로 아미타불을 제외한 두분은반가부좌형태의 모습으로 있다. 1476년 그린 것으로 후불벽화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한다. 무려 540년이 가까워 온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더군요. 


[후불벽화에 관한전설은... 극락보전 건립 후 어느 날 노승 한사람이 사찰을 찾아와 벽화를 그리겠다며 100일동안 법당분을 열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99일째 되던 날 궁금증이 많은 한 승려가 창살을 통해 법당안을 들여다보자 한 마리의 새가 입에 붓을 물고 날아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날아가 버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현존 후불벽화 중 가장 오래된 무위사 후불벽화는 관음보살의 눈동자가 그려지지 못한 미완성의 그림으로 남아있다] [내용참조-무위사홈]


아미타여래삼존불화 뒷면의 벽화로 수월관음도[보물1314호]


수월관음이 관음보살을 예배하는 선재동자[善財童子]를 내려다 보고 있는 모습으로 특히 선재동자의 어깨에는  파랑새가 앉아 있다.  아미타여래삼존불화를 그렸다는 그 전설속의 새라고 합니다. 하지만 선재동자는 동자승이라기 보다는 노승에 가까웠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벽화속의 동자승도 자연스레 세월을 먹은 탓 일까? 다시한번 사진촬영은 금지되지만 아미타여래삼존불화와 수월관음도의 축소 사진을 전해주시며 조심스럽게 허락해주신 분께 감사 드립니다. 설명 또한 잘 들었구요!!


무위사 삼층석탑 방향에서 바라본 극락보전



형미스님은 신라말~ 고려초의 명승으로 무위사에서 8년간 주지로 있으면서 중창을 주도했다고 한다.  거북모양의 받침돌과 몸돌, 그리고 구름과 용 문양이 새겨진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받침돌과 머릿돌은 정교하고 사실적 표현으로 조각이 되어 있다.  보물 507호로 제정되었다.  몸돌 앞면에는 형미스님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비문은 신라말 고려초의 문신, 당나라에 가서 18세의 나이로 급제한 인물 최언위가 짓고, 유훈열이 썻다.



다양한 각도에서의 무위사 삼층석탑, 선각대사탑비, 그리고 극락보전을 사진에 담아 보았습니다. 


무위사의 스님들...무엇에 대하여 이야기들을 하고 계신 걸까요?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76호인 무위사 삼층석탑 / 선각대사편광탑비의 제작 연대와 비슷한 통일신라말과 고려초로 알려짐

탑신의 상태가 너무도 깨끗하여 그리 오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고려초의 작품이라 하니 이 또한 감탄스럽다.


시간이 지나면 강진만으로 지는 가을 저녁노을에 어우러져 마음속의 고요함을 깨우는 범종의 타종 소리를 듣고 싶었다. 




이번 강진 무위사의 마음 비우기 여행중... 새로운 인연과 만남 입니다.  승복을 단아하게 차려 입고 점심시간의 숲속 산책을 다녀오는 두 비구니 스님! 그리고  든든한 보디가드?로 함께 한 삽살개 "천둥이" 랍니다.  항상 비구니 스님들을 볼때면 늘 궁금하다. 왜 하필 어려운 구도의 길을 걸어나선 것일까? 하지만 두분의 발걸음과 표정은  세상근심 다 없어진 편안하고 무척 밝아 보였다. 이 세상의 그 어느 집의 개 보다 더 자유로와 보이는 "천둥이" 경계감이 없이 다가와 친근감을 표현한 녀석이 자꾸 아른 거린다. 




강진 무위사에서 짧은 세시간의 머무름 여행... 국보 13호 극락보전의 건축물과 귀하고 소중한 국보속의 국보인 후불벽화[後佛壁畵] 아미타여래삼존불화 를 볼 수 있어서 내겐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가을이 점점 무르익어 가는 날에 오랜 역사를 품고있는 강진 무위사로의 마음 비우기 여행은 대만족 이었다. 


극락보전 앞의 당간지주에 아미타여래삼존불화가 그려진 대형 깃발을 꼿고 야단법석의 장엄한 법회를 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