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우리들의 이야기

간이식후 생존 5년을 넘어 10년을 향해 나아갑니다.

푸른희망(이재현) 2011. 2. 18. 23:47

 오늘은 제겐 참 특별한 날입니다.

지금까지 건강히 살아있어 5년전 일기장을  볼 수있는 행복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다섯살이 되는 날입니다. " 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구요?"

2006년 2월 18일~~~ 조선대 병원에서 간이식 수술을 받은 날 입니다.

결혼해 4살짜리 아들이 있던 제 남동생 재학이가  간 기증 결정을 해주어  2005년 11월부터

이식 적합 검사를 시작해 문제없다는 통보 이후에 결정된 수술 날짜가 바로 오늘 이었습니다.

 

 부모자식형제간에도  꺼리는 일이 많아 가정문제까지 비화되는 일들이 많은데... 제 동생은 어렵고도 힘든 결단을

하여 제게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었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런 제가 다섯 살이 되는 날이 맞지요? 

일기장을 까마득하게 채웠던 5년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수술전날,  아이들과 아내를 병실에 않혀 놓고 죽음앞에 다다른  무기력한 가장의 긴장된 모습으로

마음속의 이야기들을 털어 놓으며 고사리 손들을 꼭 쥐어 잡으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던 그 때가 가슴을 찡하게 합니다.

몸과 마음을 모두 모두 비우고 수술실로 향하던 굴러 가는 이동 침대의 속도감이 공포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같았습니다.

어딘지 모를, 상상속의 저승이 생각속을 마구 삐집고 들어 왔었지요. 

 

"이재현님~"

 

의사의 이야기가 귀에 들립니다.

 

"긴장 푸세요.  아무 일 없을 것입니다."

 

"그냥 한 숨 푹 주무신다고 생각하세요"

입에 물려진 프라스틱의 딱딱함이 무거운 공포로 다가왔었습니다.

가운 하나 걸쳐진 알몸의 육신이 아무런 힘이 없다.

귓전에 예리하고 날카로운 금속의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자~ 마취제 투여 합니다.~~"

 

"걱정 마세요~" " 주무시면 다 괜찮아 집니다."

 

그렇게 나는 눈이 감겨 버렸다.

.

.

.

한참을 자다 일어났다.  아내도 아이들도 전혀 보지 못했다. 그렇게 19시간이 흘러갔다..........

 

 기증자인 동생은 회복이 빨랐다.  며~칠이 지난 뒤에 동생은 이미 퇴원을 해서 집에서 몸조리 중이었다. 

병원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서 동생과 나를 불렀다.  나는 아직 병원 무균실에서 고통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였습니다.

웃으라고 합니다.  그냥 웃었습니다.  동생 손을 꼭잡고~~~

 

 

 

저의 공주님들의  예쁜 마음이 담긴 선물 입니다.

중학생과 유치원 생이던 큰 놈 푸른하늘이와  막내 푸른별이의 응원메시지와  하트 작품 입니다. ^^*

 

푸른하늘 ,  우리 부부의 희망 덩어리~ 아빠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입니다.

 

2006년 입원에서부터 수술, 치료, 퇴원, 회복까지의 1년의 일기장입니다.

 

너무나 소중한 사랑을 실천한 제 남동생  이 재학, 그리고 귀여운 조카 녀석 입니다.

내 동생 재학이~  지금은 마음의 상처를 말끔히 씻어내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는 참 멋진 녀석 입니다.

 

[2006년 3월 31일자 전남매일 ]신문을 오려 두었던 내용입니다.

당시 이 지역병원 첫 생체 간 이식 성공 이었다고 합니다.

 

수술 일주일전 병원 입원을 하며 여러가지 테스트와

수술에 대한 준비를 위해 있었던 일들을 기록 했습니다. 

감회가 정말 새롭군요.  오래되어 먼지 가득한 가방을 꺼내어 일기장을 찾았습니다.

 

드디어 오늘의 5년전 오늘입니다.

날씨는 참 맑았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전날 저녁부터 20리터의 설사제를 다 마시고 위장과 대장속에 있는 물질을

모두 제거해 내느라 몸이 만신창이 입니다. 이때부터 아내가 대필을 했습니다.

아내의 긴박함이 보이는 내용 입니다.  동생이 먼저 향하고 2시간의 초조한 시간이 흐른 뒤에

제가 들어 갔군요~  시간이 많이 흘러~~~~~

그날 저녁 23시 15분에 제가 수술실에서 나왔습니다.  살았나 봅니다.

 

수술후 다음날~  마취가 참으로 오래 갔군요. 

아하 제 글씨가 보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무균실로 옮겨서 수술후 일주일여가 지났을 때로 보입니다.

중환자실에서는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가 없었지요.  온 몸에 달려 있는 이상한 것들이

너무도 많았었지요.  지금도 머리가 무겁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드디어 퇴원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무균실에서 걸음마 연습으로 체력을 다지고, 투여되는 약기운으로 간신히 살아 목숨을 부지하더니

집으로 갈 수 있다는 통보가 내려졌습니다.  밤이고, 낮이고, 새벽이고 가리지 않고 엄습하던 고통의 40일의 악몽들이 스쳐 지납니다.

참을 수 없을만치 괴성을 지르며 간호원을 향해 욕을 쏟아내던 일들이 생생합니다. 

 

코로 호스를 집어 넣던 고통들, 복부에 느껴지는 압박과 찢어지는 아픔들, 온몸을 누르는 사이코시스 상태의 처절함이 악몽으로 되살아나는 듯 합니다 1평 정도의 1인 무균실에서 치렁치렁 매달린 삶을 지탱하게 했던 이기들을 달고 침대와 화장실을 오가던 그 때가 진저리 납니다.

 

제 아내의 수발이 없었다면 어찌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겟습니까.  신라의 정신공황 상태에서 벌어지는 온갖 어려움을 감내했던 아내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결정에 날듯이 기쁩니다.  다만, 주의사항을 철저히 지키지 않으면 재입원 된다는 엄포를 놓았었습니다.

 

 

지금의 제 모습 입니다. [삼장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옴]삼장님 블로그 주소 입니다.http://blog.daum.net/seeagain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퇴원해 1년간을 회복하며 체력을 되찾고 과감히 농사를 선택해 단감 재배를 시작으로 농업을 배웠습니다.

3년간의 감재배에서 농사의 감을 잡았고,  건강 또한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이제는 딸기를 재배하며 농사의 진한 맛을 배워갑니다.  이런 웃음을 잃지 않게 해준 제 동생과 아내, 아이들,  모든 고마운 분들에게 다섯살 걸음마 인생의 기쁨을 전해 드립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세째와 넷째 하트로 행복한 삶을 영위해 갑니다.

제 블방을 찾아 주시는 이웃님들의 가정에도 단란한 사랑의 예쁜 행복들이 가득하세요~

다섯살 쿤타킨테는 간절히 두 손 모아 기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로 제가 자주 들어가는 다음 카페 " 리버가이드"에서 퍼온 우리나라 간이식 자료에 대해 공유합니다.]

 

http://cafe.daum.net/liverguide

2000년 부터 2007년까지의 간이식 현황에 대한 그래프 자료 입니다. 

뇌사자 이식보다는 가족, 혈연간의 생체 이식률이 더욱 높음을

알수가 있는 도표 입니다.

 

 

 이번엔 여러 장기의 이식 현황및 대기자와 기증 희망자에 대한 내용입니다.

아마도 지금은 더욱 많은 환우와 기증 희망자들이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참고로 대한 이식학회 홈페이지를 링크 합니다.

http://www.ksot.org/

상기의 이식학회 사이트에 가시면  "간이식과 새로운 삶"이라는 배너가 있습니다.

이곳을 클릭하여 간에 대한 여러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도 2009년에 장기 기증협회에 가입을 했습니다.

혹여 살아가다 불행하게도 뇌사 판정준하는 사고 발생시  제 몸에 기능이 남아 있는 장기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기쁨을 누리고자 합니다.

 

지금 재현이는 참 행복한 날들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어리기만 했던 아이들도 벌써 큰녀석이 20살과 막내가 13살이 되었답니다.

이곳 장성 황룡면으로 이사오면서   황룡 부흥마을  이재갑 형님, 청년회장님의 크신 도움으로 정말로 "행복한 우리집" 도 가지게 되었구요.  더욱더 건강한 삶의 열정으로 후회없이 살아 가고자 합니다.  10년이 될때 지금을 돌아보며 미소 지을 수 있게 ~~~

이웃님들 중에도 아픔들을 가지고 있으시다면 " 잘 될거야" 라는 말씀을 마치 주문처럼 달달 외치세요..... 두드리면 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